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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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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282g | 118*188*19mm
ISBN13 9791140704057
ISBN10 114070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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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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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 돌려지고 손들이 바삐 오르내렸다. 빨갛고 노란 얼굴이 그려진 카드들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다. 굿 버사는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당장이라도 단잠에 빠져들 것 같다. 하지만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밤이 펼쳐져 있는데 어떻게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밤은 은밀하게 공유되었고, 낮은 무리 전체에게 뜯어 먹혔다.
--- p.24

장갑을 파는 일은 그녀의 일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그와 별개로 감당하고 있었다. ‘세상의 때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오염으로부터.’ 클라리사는 팔을 힘주어 뻗은 채로 생각했다.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장갑이 벗겨지면서 팔에 칠했던 분가루가 날렸다.) 더 이상 신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 말이다.
--- p.65

구두닦이 소년은 손풍금으로 멜로디를 자아내고, 노란 빵과 하얀 앞치마, 잼 단지가 있는 주방의 식탁은 세상의 중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왜 보도에 피 묻은 종이가 날아다니는 거지? 한 번에 세 계단씩 올라가 융성한 응접실에 들어서면…… 물론, 물론, 난롯불이 테리어의 뒷다리에 따스한 그림자를 일렁이고, 초록 용무늬가 그려진 뺨이 볼록한 찻주전자가 맞이한다.
--- p.81

그들은 15년 정도 런던 거리를 조용히 오가며 살았다. 당신도 그들을 누군가의 응접실에서, 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마치 그녀와 매일 마주친 듯이 “안녕하세요, V 양”이라고 인사를 건네면, 그녀도 “날씨가 참 좋지요?”라거나 “오늘은 날이 궂네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걸음을 옮기면, 그녀는 마치 안락의자나 서랍장 속으로 스며든 듯 모습을 감출 것이다.
--- p.87

커튼이 젖혀진 창문을 통해 보랏빛 저녁 하늘이 보였다. 음악실에 있는 갓 없는 전등에 불을 밝히니 창문 밖에 펼쳐진 보랏빛이 한층 더 짙어졌다. 꽃을 쥔 채 몸을 조그맣게 말아 앉은 줄리아 크레이는 마치 망토를 뒤로 펄럭이듯 런던의 밤을 벗어던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채 홀연히 앉아 있는 그녀의 둘레에는 영혼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기운, 그녀가 만들어 자신을 둘러싸게 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 p.113

하지만 그는 죽었다. 그가 나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끔찍한 일이야! 너무나! 그렇게 무정했다니! 저기 그가 앉았던 노란색 안락의자가 있다. 낡았지만 여전히 견고한 저 의자는 우리를 능가하여 세상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벽난로 위 선반에 진열된 유리와 은 장식물도. 그의 생명은 벽과 카펫에 줄무늬를 그리는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처럼 덧없다. 내가 죽는 날에도 태양은 그렇게 잔디와 은 식기를 비추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수백만 년간 노랗고 넓은 오솔길, 이 집과 마을을 지나 무한히 먼 곳까지 비추겠지.
--- p.170

그러나 우리가 여행하는 이 도시에는 돌도 대리석도 없다. 다만 견디며 버틴다. 흔들림 없이 서서. 인사를 건네거나 맞아주는 얼굴도 깃발도 없다. 그렇다면 희망을 버리고, 사막처럼 기쁨을 말려야 한다. 벌거벗은 진군. 누구에게도 상서롭지 않고, 그늘조차 드리우지 않는 헐벗은 기둥이 지독히 반짝인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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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버지니아 울프를 읽을 때면 늘 시간이 정지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옷에 핀을 꽂는 순간, 교정을 둘러보는 순간, 그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짧지만 강렬한 이 묘사들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머물렀다. 버지니아 울프를 계속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이 책은 이미 내게 선물이었다.
- 강화길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쓴다. 활력이 넘치고 몸과 마음으로 웃는 여자들에 대하여, 때론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한숨을 쉬고 활짝 열린 창밖을 바라보며 불안한 징조를 예감하는 여자들에 대하여, 그들의 기쁨과 희망과 공허와 고통의 순간에 대하여. 버지니아 울프의 인물들은 강렬하고 생생한, 생명 그 자체로 존재하는, 진짜로 살아있는 여자들이다. 나는 작가가 이 소설을 ‘썼다’가 아니라 ‘쓴다’라고 쓸 것이다. 영원한 현재형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이 시대의 가장 현대적인 고전이다.
- 정이현 (소설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아주 짧고 굵게 내지르는 비명은, 목적과 형태가 없다. 시대의 틈에서, 그의 내면에서 쏟아진 문장들이 전부 각기 다른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단정하고 정갈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것은 혼돈의 속삭임처럼 느껴진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흔들리는 수면 같을 것이다. 무언가 일렁이고 흘러가고 요동치는 세상. 그의 책을 읽을 땐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 천선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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